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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대잔치

맥북

나는 노트북이 3대 있다. 2010년 맥북 프로 13인치, 2015년 맥북 프로 15인치, 삼성 노트북 9 (2016년형). 이 중 2010년 맥북 프로는 사실상 사용하지 않아 동면중이다. 어디 팔기에도 이미 10년 전 제품이라 민망하고, 나도 딱히 팔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그냥 가지고만 있다. 아마 언젠가 그냥 폐기할 거 같다.

삼성 노트북 9은 해외 출장을 나갈 때 챙겨간다. 일단 다니는 회사에 노트북 라인업도 있는만큼 대외 활동할 때는 그 만한 노트북이 없다. 890g의 무게는 출장 나갈 때의 무거운 어깨를 좀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주로 오피스 제품만 사용해서 별 다른 기능도 필요 없고, Micro HDMI to HDMI 변환 케이블을 몇 개씩 들고 다니면서 발표할 때 주로 쓴다.

마지막 맥북 프로 15인치가 아직까지 현역으로 여러 방면에서 사용중인 노트북이다. 상해 난징동루 애플스토어에 가서 카드로 긁어서 샀다. 그 때 2010년형 13인치 맥북 프로로 아주 허접한 동영상 편집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도저히 편집 하다가 속 뒤집어져서 앞뒤 안재고 그냥 질렀다. 터치바 달린 모델이 막 나온 시점이었는데, 썬더볼트 달랑 4개 달린 포트를 보고 실망해서 작년 모델을 그냥 가져온 기억이 난다. 포트도 포트지만 나비식 키보드 이슈를 생각하면 정말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이 노트북으로 주로 Final Cut Pro X를 이용해서 영상 편집을 하고 있다. 요즘은 가끔 파이썬 프로그래밍도 하고,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서 밖에서 코딩하는 즐거움도 만끽하고 있다. 맥북 들고 카페에서 뭔가 하고 있으면 허세 부리는 것처럼 보여질수도 있는데, 그 허세라는 느낌을 이 맥북은 준다.

분명 이 노트북 보다 비싸거나 얇거나 고성능인 노트북은 세상에 많다. 하지만 아무도 ThinkPad를 펼쳐놓고 코딩하는 사람에게 허세 부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건 뭐랄까, 진짜 일이 급해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코딩하는 그런 느낌이다. 나도 내 삼성 노트북 9을 펼쳐놓고 코딩을 하거나 웹서핑을 하고 있으면, 누가 보더라도 일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맥북은 다르다. 사과 마크를 펼쳐놓고 코딩을 하던 웹서핑을 하던 정말로 급박하게 보고서를 쓰던 멀리서 볼 땐 허세의 느낌이 난다. 뭔가 단순한 보고서가 아닌 창의적인 무언가를 하는 느낌도 들고 왠지 음악 아니면 영상 아니면 사진 관련 일인거 같고 괜히 허세 부리는 것 처럼 보인다.

다른 노트북들은 성능이 어떻고, 디자인이 어떻고, 두께가, 무게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많은 것들을 비교 당한다. 하지만 맥북은 그냥 맥북이다. 나비식 키보드가 거지 같아도 맥북이고, ESC를 터치바에 넣어도 맥북이다. (둘 다 다행히 개선되었다.) 맥북은 엄연히 ‘한낱’ 노트북이면서도 ‘같은’ 노트북들과의 비교를 거부한다. 달라서 따돌림 당하는 게 아니라 달라서 특별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뭔가 다른 것을 쓰는 사용자 까지도 특별한 것 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준다.

몇 가지 비법이 있을 것이다. 맥북을 설계한 기업의 철학, 디자인, 그리고 Windows 가 아닌 Mac OS, 실제로 음악/사진/영상 등의 예술 분야에서 많이 쓰인다는 점, 그리고 사양 대비 높은 가격으로 인한 약간의 명품 효과…

어느 것 하나 콕 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맥북이 그냥 노트북들과 다르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른 게 불편할 순 있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 내가 이렇게 다른(이상한) 것도 잘 쓴다. 나는 특별하다.

마치 단순한 전자 기기가 아닌 어떤 명품 브랜드를 사는 듯한 느낌을 소비자에게 줄 수 있다는 게 애플의 놀라운 점이다. 맥북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는데, 그냥 노트북일 뿐인데, 그걸 쓰는 소비자까지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게 어쩌면 애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이고 그들이 끝까지 지키고 싶어하는 브랜드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