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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대잔치

기획의 닌텐도

내 머리속 닌텐도(Nintendo)는 예전 꼬꼬마 시절 자주 플레이했던,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의 한국판 게임기가 전부였다. 닌텐도 Wii가 대박을 치면서 가끔씩 해볼 기회가 있었지만 Wii U가 폭망하는 바람에 회사가 이제 사라지는건가? 하고 그 뒤로는 관심을 끊었다. 뭐랄까, 콘솔로 대박을 쳤던 시절은 NES가 거의 마지막이었던 거 같고 그 뒤로 콘솔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망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레전드가 시대의 흐름 앞에서 힘없이 사라지려나 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나의 큰 착각이었다. 닌텐도는 Play Station과 XBox가 양분한 콘솔 시장을 더 이상 노려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두 기기를 쓰지 않는 사람들의 두 손에 쥐어질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했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위한 고성능 기기는 닌텐도에겐 무리다. 닌텐도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고, 그 오랜 고민의 끝에 닌텐도 스위치가 나왔다.

지금 회사에서 상품기획 업무를 맡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기획 업무는 정말로 어렵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 미리 소비자가 어떤 것을 원할지 상상해봐야하고,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길이 맞다는 걸 믿어야 한다. 닌텐도 스위치가 처음에 기획될 당시에 과연 닌텐도 내부에서 이 컨셉이 제대로 먹힐 것인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텐데, 그 수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이러한 컨셉의 휴대용 게임기를 다시 시장에 내놓은 닌텐도의 기획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닌텐도의 기기들은 과감한 도전들을 자주 하는데, 3DS가 나왔을 당시에도 듀얼 스크린 기반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놀라웠다. 이번엔 조이콘을 탈착식으로 변경하면서 평소에는 기기에 연결해서 휴대용 게임기로 즐기다가, 집에서는 본체를 Dock에 연결하고 조이콘은 빼서 별도의 주변기기 등으로 연결하여 편하게 사용하는 컨셉은 정말 놀라웠다. 링피트를 집에서 직접 해보고 있는데 기획 단계에서 분명히 이러한 확장성을 염두해 두었을 것이다.

닌텐도 스위치를 두고 해상도가 왜 4K가 안되는지, 게임 그래픽 수준이 왜 타사 대비 떨어지는지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 게임기를 사는 사람들은 플스나 엑박으로 고품질의 그래픽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캐쥬얼한 게임성, 그리고 게임 속 이야기에 편하게 빠져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 게임기를 산다. 정확히 닌텐도가 타게팅하고 원했던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것이다. 기획 의도를 거의 100% 정확하게 실현하고 있는셈인데, 정말 대단한 것이다.

나는 언제쯤 이런 치밀하고 날카로운 기획 능력을 가지게될까. 기업으로서의 닌텐도는 정말 배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