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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대잔치

영상 만드는 직장인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리고 영상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튜브를 하지만,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구독자수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구독자가 늘면 좋겠지만, 정확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채널을 운영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키는대로 나 찍고 싶은 거 위주로 영상을 만들고 편집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유튜브라는 채널은, 내가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들을 자랑하는 소박한 공간이다. 구독자가 더 늘면 무엇을 할 수 있고 광고비는 얼마를 더 벌고 하는 이야기는 나와는 거의 무관한 얘기였고, 지금도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주변에서 이왕 유튜브를 하는 거라면 좀 더 정성을 들이는게 어떻겠냐는 얘기들을 많이 해주신다. 제일 많이 듣는 얘기는 왜 본인이 나오지 않냐는 거다. 유튜버가 카메라에서 자주 사라지고 거의 나오지 않는 채널을 본 적이 있는가?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본인이 주인공이 아닌 채널들이 주로 그렇긴 한데 내 채널은 굳이 따지자면 그런 부류의 채널도 아니면서 여하간 유튜버 본인이 잘 나오지 않는다.

원인은 하나다. 나는 내가 영상에 나오는게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연출은 해보고 싶은데, 그 연출의 대상이 내가 되는게 너무 어색하다. 그리고 화면 속에 내모습이 단순히 익숙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마음에 안든다. 키 작고 뚱뚱한 30대 중반의 아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카메라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나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 영상 촬영이나 편집은 너무 재밌는데, 그걸 위해서 내가 직접 화면에 나와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게 약간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배우들이 감독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는 게 이해가 간다. 스크린을 기술적으로 보완하고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은 분명히 감독의 역할이자 권한이다. 하지만 그 스크린을 채워내는 역할은 오롯이 배우들이 하게 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눈빛으로 얘기하고, 스크린에 좀 더 잘 나오게 몸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말도 잘한다. 더 받을 만 한 것 같다.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는데, 그래서 결론은 뭐냐… 유튜브는 계속 해봐야지. 그리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어차피 구독자수도 별로 없는 채널이니 내가 좀 더 자주 나와봐야지. 다른 출연자를 섭외할 수 있는 거 아니라면 힘들더라도 내가 내 얼굴 보면서 계속 편집하는 수 밖에.

나에게 있어 유튜브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치유 공간이다.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래도 할 때는 열심히 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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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대잔치

희망 버리기 기술

<신경 끄기의 기술>에 이은 신작 <희망 버리기 기술>을 봤다. 흡입력 있는 문체란 이런 것일까, 읽는 동안 여러 생각들이 오가기도 했고 때론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끄덕여졌다. 세세한 내용까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가지, 덧없는 희망에 기대지말고 차라리 의미있는 고통을 선택하라는 그 말은 뇌리에 박혀 있다.

살다보면 가끔씩 헛된 상상을 자주 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뭐 사야지, 뭐 해봐야지, 아 월급이 3배 정도만 올랐으면 좋겠다 등등 허황되고 아무런 근거 없는 상상부터 약간은 구체적이지만 역시 근간이 없는 상상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미래가 막연히 희망적일 것이라 생각하고 현재를 희생하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럴싸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이유 없이 믿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건 아니지만 때론 너무 덧없다. 아무 노력없이 기술이 저절로 발전한다고 믿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접근법인 것 같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행복한 순간은 짧고 고되고 힘든 시간은 계속 이어진다. 막연히 헌금을 많이 내면 천국에 내 집이 대궐이 되고 마당이 생기고 하지 않는다. 삶은 또다른 삶으로 윤회될 뿐이다. 나는 기독교나 천주교를 부정할 생각이 없고 오히려 좋은 일들을 많이 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고마울 따름이지만, 사상적으로는 불교의 이 어쩌면 희망없는 공허함이 마음에 든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게 정답에 근접한 것 같다.

이 고통의 연속인 인생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어떤 고통을 선택할 것인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로또에 당첨되어서 어떤 차를 살지 고르는 것 대신, 오늘 저녁에 치킨 먹는 걸 포기하고 근력 운동을 해서 근육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고통을 선택할 수 있다.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해서 심도 깊은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배움이라는 고통은 지적 성찰을 가능하게 해준다. 저자는 여기에서 통찰을 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란 어떤 고통을 선택할지에 대한 자유다. 이왕이면 의미있는 고통을 선택해라. 그 것이 운동이 되었든 공부가 되었든 봉사활동이 되었든,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만한 일을 해라. 그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다. 어떻게 살아갈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떤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고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위해 현재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공부에 매진한다. 그 고통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만 진정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을 뺄 수 없다. 몸을 힘들게 하는 고통을 선택할 때만 비로소 우리는 살을 뺄 수 있다. 모든 것은 어떤 고통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그 고통이 가치있는 결실을 가져다 주는가에 달렸다.

나도 올해 들어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올초부터 딥러닝 관련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영어 공부도 비교적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다. 내 업무와 관련된 공부도 계속 신경쓰고 있다. 생각해보면 주위 사람들은 저마다 의미있는 고통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물심양면 애를 쓰고 있는 친구들을 봐도 그렇고 이론은 몰라도 이미 다들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어쩜 우리 모두 체감으로 인생이 원래 이런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중에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전작에 비해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작가가 정말로 많은 고민끝에 내놓은 통찰을 담고 있다. 작가와 달리 나는 글을 잘 못쓴다. 그래서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이 책을 꼭 보시라는 말 정도 뿐이다. 그리 두껍거나 읽기가 거북한 책은 아니다. 가볍지만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니 초반부가 약간 지루하더라도 꼭 완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