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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차

차를 사고 나서 한동안 손세차 삼매경에 빠졌다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 동안 세차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차를 사면 자동 세차 기계에 넣지 않고 꼭 손세차 해주면서 정성껏 돌봐야지 했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춥다는 이유로 기계 세차도 몇 번을 벌써 들어갔다 나왔다. (물론 비 접촉 방식의 최신식 기계 세차만 고집 했지만)

손세차는 품이 정말 많이 든다. 차를 세차장으로 가져가서 내가 직접 고압수를 뿌려가며 먼지를 털어내야하고, 스노우폼을 뿌려서 때를 풀리고, 카샴푸를 풀어서 미트질을 정성껏 해주고 다시 고압수를 뿌려줘야 한다. 이게 대략 1/3 정도 스텝이다. 나머지는 닦아내고(+광택), 내부 청소를 해주는 것인데 정말로 얼만큼의 만족도를 원하는지에 따라 들어가는 품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세차장에 가면 정말로 많은 분들이 본인의 시간과 정성을 가득 담아서 차를 씻겨내고 광택을 만들고 서로 어떤 세차용품이 좋은지 토의하는 모습들을 보곤 한다. 차를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해서 대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차를 씻겨내는 작업인데 다들 정말로 열과 성의를 다한다.

손세차를 해보기 전에는 몰랐었다. 막상 내가 해보니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여기저기 다녀주고 때로는 내가, 혹은 다른 누군가의 잘못으로 여기저기 상처가 나면서도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 녀석. 그런 녀석을 위해 최소한의 정성을 담아서 씻기고 관찰 하면서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알아보는 것. 이게 손세차의 묘미인 것 같다.

곧 다가오는 미래에는 완전한 자율주행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때는 오히려 사람이 운전하는 게 불법 이거나, 더 까다로운 면허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거나 할지도 모른다. 차량 소유 권한과 운행 권한이 다를지도 모르고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드라이브의 개념이 바뀌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지금은 차량을 소유하고 있지만, 언젠가 공유 경제 기반으로 필요할 때만 차를 불러서 여기 저기 다니고 불필요해지면 언제든지 아무곳이나 세워두면되는 그런 때도 올 것이다. 내 차는 아니지만 밖으로 나가면 내가 탈 수 있는 차는 얼마든지 있고, 소유하지 않으니까 각종 보험과 세금을 낼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소유 개념에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능하면 나는 나 스스로의 의지로 계속해서 나의 차를 소유하고 싶다. 그리고 인지 능력이 받쳐주는 한 계속 스스로의 의지로 운전하고 싶다.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타고 다니고 대부분의 시간을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타고 다니는 차 말고 나만 타는 차를 계속 가지고, 오늘처럼 세차해주면서 함께 세월을 보내고 싶다.

언젠가 이런 손세차 문화가 낡은 예전 시대의 이해할 수 없는 문화로 기억된다 하더라도 내가 힘이 닿는 한은 계속해서 손세차를 하고 싶다. 이게 구식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구식으로 살고 싶다.

내 차 이름은 ‘아식이’다. 이제는 구형이 되었지만 내 눈엔 여전히 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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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기획안이라고 들고온거야?

B2B 제품 기획일을 하고 있어서 B2C랑 얼마나 다른지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략 비슷한 맥락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기획일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한다.

관성적으로 일하려고 생각하면 기획일은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고객이,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게 명확하거나 혹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발굴해야 하거나 하지 않을 경우는 더더욱. 세상에 처음부터 새로운 것도 없고, 모방 없이 창조 없다는 말이 정말로 기획 업무를 하다보면 실감이 난다. 소비자가 원하고 경쟁사가 하고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정말로 외면하기 어렵다. 그걸 비틀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생각해 내는 것도 더더욱 어렵다.

기획하는 제품이 해당 시장에서 리더로 모든 방면에서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기술력이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면, 어쩌면 기획 업무가 좀 편할 수는 있겠다. 어떻게 기획해도 세계 최초이거나 세계 최고라면 할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보통의 일반적인 경우 기획 부서에서는 개발팀의 실력치를 탓하기 쉽상이고, 개발팀에서는 저것도 기획이랍시고 들고 온 사람의 지능 수준을 개탄하기 쉽상이다. 나는 이미 다 만들어진 제품의 성능을 평가하는 부서에 있을때 기획과 개발 둘 다 한탄한 적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렇게 개탄했던 상품 기획 부서에서 대체 왜 이렇게 기획이 잘 풀리지 않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상품기획은 대표적으로 하는 일이 잘 보이지 않는 곳이다. 수치로 드러낼 수 있는 거라고는 어떤 과제를 몇 개 기획했냐인데, 실상은 그 과제 개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대단한 건 아니다. 기획이 그렇게 금방 금방 된다는 건 본인이 고민할 여지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 되고, 실제로는 고객이나 개발에서, 혹은 경쟁사가 가진 사양을 받아쓰기 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어렵다. 상품 기획은 현재 개발팀이 가지고 있는 실력치라는 땅 위에 서서 고객이 혹은 고객의 소비자가 지향하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세상에 없던 나무를 그려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구름 근처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씨앗이 땅에 내려가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쩌다 크기 시작해도 이미 자란 경쟁사의 나무에 가려져 햇볕(=고객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

비싼 제품은 성능이 다들 고만고만 하기 때문에, 어떤 차별화된 기능을 발굴해서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어렵다. 싼 제품은 싸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일단 어렵다. 제품에 들어가는 리소스가 풍족하더라도 기획은 쉽지 않고, 반대로 쓸 수 있는 리소스가 너무 부족해도 기획은 어렵다. 중간은 그 중간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 가격과 기능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드러나지도 않고, 어쩌다 기획이 통과되어서 프로젝트가 착수 되어도 고민이 점점 많아진다. 기획 의도대로 팔릴까? 고객들이 외면하면 어쩌지? 이 기능을 억지로 주장해서 넣었는데, 고객들이 안쓰면 개발팀에 무슨 면목으로 설명하지…?

채택되는 아이디어가 하나라면, 거절되는 아이디어는 열 개가 넘는다. 조금 아쉽게 채택되지 않은 게 2~3개 정도라면 선방이다. 나머지는 비웃음을 사기 쉽상에다가 유관 부서에서 (예전에 나처럼) 비난하기 쉽상이다. 결정도 어렵고, 고민은 길다.

유일한 즐거움은, 나의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고 유관 부서나 고객과 함께 그 작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실제 제품에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뭔가 대단히 혁신적이거나 특허를 쓸 정도의 것이 아니더라도 좋다. 작지만 의미 있는 통찰,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접근, 기술의 의미에 대한 발견.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들이 제품이라는 결실로 맺어져 고객과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 기획인으로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때 쯤이면 나는 다른 새로운 걸 기획하고 있을테고, 어쩌면 상당수가 내가 기획했다라는 걸 잊을테지만, 그러면 뭐 어떠랴. 무럭무럭 자라난 그 제품을 보며 내가 뿌듯하면 그만일테지.

기획은 어렵다. 이 것도 기획안이라고 들고 온거야? 라며 서류 뭉치를 내던지는 드라마의 한장면을 볼때마다 감정 이입 되서 서글프다. 하지만 9번 거절 당해도 10번째 다시 새로운 기획안을 들고 간다. 언젠가 거목으로 성장할 나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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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과 괴물들

근래 들어 최악의 성범죄 관련 기사를 접했다. 사람들이 무슨 박사 사건이 있다고 하길래 뭐지 하고 찾아봤는데 정말 사탄이 실직할 정도의 일이었다. 정말 이게 21세기에 일어난 일인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맞나 싶을 정도였고, 굳이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N번방은 뭔가 은밀한 조직처럼 운영되었는데, 그 비틀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반 사람들에겐 큰 금액을 그것도 비트코인 같은 전자 화폐로 환전해가면서까지 지불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는 이제 곧 포토라인에 설테고, 법의 심판을 받겠지만, 그에 동조해 기꺼이 비트코인을 지불하고 그 피의자를 신처럼 떠받들며 낄낄거렸던 그 불쾌한 괴물들은 누구였을까.

박사로 불렸던 그(조주빈)와 동조했던 괴물들, 그리고 그들을 떠받들며 함께 괴물이 된 N번방 참여자들은 모두 신상 공개가 되어야 마땅하다. 두 번 다시 이러한 최악의 성범죄 사건이 발생해선 안된다. 그리고 이번 일로 사각 지대에 있는 가출 청소년들이 다시 안전망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범죄자 소탕에 이어 후속 조치가 취해지길 바래본다.

코로나19가 몸의 전염병이라면 이번 N번방 사건은 마음의 전염병이다. 우리가 다른 포유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공동체 의식과 함께 지키고자 하는 가치관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에 따른 자기 통제력을 가진 것인데, 이래서는 다른 포유류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이번 사건을 잊지 말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각성하고 이 괴물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아주 평온한 얼굴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행동할 괴물들의 민낯을 반드시 드러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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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오늘 미국과 인도에 있는 현지 직원들과 메일, 메신저로 안부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미국은 지금 코로나19가 이제 무서울 정도로 확산되고 있고, 인도 또한 마찬가지 상황으로 일부 지역들은 lockdown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필수 사업장들을 제외한 나머지 공장들은 당분간 문을 닫게되는데, 그 영향이 알음알음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아무튼 다행히도 나와 연락하며 일하는 그 친구들은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걱정스런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던 그들인데, 이제는 서로 같은 처지에서 부디 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 되기를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부디, 이 어려운 시기가 어서 끝나기를, 그리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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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나는 딥러닝(Deep Learning) 전문가도 아니고, 이걸로 밥먹고 살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심지어 그렇게 큰 관심을 두고 살지도 않았다. 그저 우연히 재작년 쯤에 업무와 연관되어서 몇 달간 공부하고 업계 1, 2위를 다투는 몇 군데 업체들과 만나 보았을 뿐이다.

지금은 물론 딥러닝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고, 업무적으로 딥러닝을 주로 다루는 분들과 가끔 회의 석상에서만 우연히 만나고 있다. 이 정도 설명이면 딥러닝과 내가 얼마나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그런 내가, 최근에는 딥러닝에 대해서 알아보고 공부하고 공부한 걸 정리해서 부서에도 공유하고 코딩도 해보고 실제로 알고리즘도 분석해보고 있다. 나는 회사에서 제품 상품 기획을 하는 사람이고,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그런 내가 딥러닝에 이렇게까지 몰두하고 있다.

딥러닝이 4차 산업 혁명의 중심이니까? 이거 모르면 아는 척 하기 힘들어서? 왠지 대세 기술이니까 숟가락 한 번 올려보려고?

아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공부한다기 보다는, 정말로 그냥 궁금해서 알아보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나는 참고로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참 하기 싫어했다. 관심있는 프로그래밍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파고 들었지만, 재미도 없고 재능도 없는 공부는 등한시했다. 수학이 특히 싫었다.

수학 싫어하면 딥러닝을 파고 들기는 쉽지 않다. 당장 경사하강법과 역전파에서 중요한 미분은 오늘날의 딥러닝이 있게 한 핵심적인 수학 개념이니까 중요하다. 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학교 수준의 수학부터 다시 개념을 잡고 복습을 해야만 했다. 순전히 딥러닝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다. (놀랍게도 알고 싶어서 공부하니까 너무 쉽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서울대 갈 건 아닌 거 안다.)

나는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다. 우리 인간이 쓰는 언어도, 이미지 속에 객체 인식도 뭔가 기가 막힌 알고리즘과 방정식을 통해서 해결될 줄 알았다.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때는, 분명히 그 기저에 알고리즘이, 정교하게 설계된 방정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실시간 번역과 이미지 속에서 고양이를 찾고 그 고양이가 어떤 종인지도 구분해내는 소프트웨어는 그런 특정한 방정식에 기반한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의 두뇌를 모사한 방식의 신경망(Neural Network) 그리고 어마무시한 학습 데이터와 심층 네트워크로 이뤄진 딥러닝이다.

결국 딥러닝을 이루는 핵심은 적절한 신경망의 설계와 함께 엄청난 양의 학습 데이터라 할 수 있다. 마치 아기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학습해 나가면서 사물을 구별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발견한 가장 좋은 방식이 사실은 자연이 오래전부터 내놓은 발명품이라는 게 참 놀랍고도 경외감이 든다. 자연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자연이 어떻게 우리를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 자연으로부터 여전히 공부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자연에게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고, 그래서 배우고 익힐수록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