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맥북프로 16″, 2019


애플 제품들은 과거와의 결별이 빠른 편이다. CPU도 내가 기억하는 것만 IBM에서 인텔로, 그리고 다시 자체 디자인의 애플 실리콘으로 이동했는데, 사실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이 이렇게 빠르게 플랫폼을 바꾸는 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CPU를 바꾸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위대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도 Win32 호환성은 사수 했지만, ARM 플랫폼으로의 진입은 아직 애를 먹고 있지 않나. 점유율이 낮아서 혹은 HW/SW 독점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과거 플랫폼에 얽매이지 않고 빠르게 결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플랫폼을 옮겨가는 것은 대단하고 칭찬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사용하고 있는 맥북프로 16″ (2019)를 볼때면 마음 한구석이 쓰라린게 사실이다. 아마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맥북프로 유저들이 꽤나 될 것 같은데,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 판매가를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차마 팔겠다는 용기도 생기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만약 다음 해에 M1 칩이 나올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이거야 뭐 내년 주식 가격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과 다를 바 없는 바람이지만, 정말 놀랍게도 사고 나서 1년 뒤에 M1 칩이 세상에 등장했고, 거짓말처럼 세상을 바꿔버렸다. 그렇게 나의, 우리의 맥북프로 16″ (2019)는 인텔칩이 탑재된 마지막 맥북프로가 되었다.

물론 영상 편집이나 다른 가벼운 용도로 잘 활용했고, 지금도 쓰임새가 없진 않아서 이렇게 쓰는 날도 있기는 하다만… M1 Max 칩이 탑재된 맥 스튜디오를 영상 편집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격차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더 놀랍고 그래서 더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같은 4K 60fps 영상 소스로 편집을 하고 렌더링을 해도, export 작업을 해도… 일단 처리 속도는 둘째치고 팬소음부터 차원이 다르다. 맥북프로로 영상 편집을 할때면 심심치않게 비행기가 이륙하는듯한 팬소음을 들을 수 있었는데, 소음 대비 퍼포먼스는 맥 스튜디오와 비교하면 처참할 지경이라 마음이 아팠다. 거기다 디자인을 위해 “프로” 라는 이름과 맞지 않게 포트를 모두 USB-C (썬더볼트)로만 구성해서 매번 sd카드를 허브에 연결해서 써야하는 불편함은 차라리 소소하다. 분명 출시할때는 물리적인 ESC키도 부활시켜줬고, 그 망할 키보드 구조도 개선해줘서 이제는 살만하다! 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존버한 스스로에게 큰 칭찬과 함께 과감하게 질렀건만, 단 1년만에 M1 등장이라니 아마 나같은 사람은 주식을 하면 잃으면 잃었지 절대 돈벌진 못할 것이다.

중고가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사용성은 최신 맥북프로와 비교할때 뭐하나 나은 점이 없다. 그나마 하드웨어 디자인은 변태적인 애플 디자인의 정수를 담았다 생각하지만 (솔직히 최신 맥북프로의 하드웨어 디자인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디자이너들이 단체로 워크샵이라도 간 사이 엔지니어들끼리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지 뭐, 하고 만든 디자인이 아닐까?) 단지 디자인 하나만 보기엔 뭔가 애매하다. 다행히 맥 스튜디오를 구매해서 망정이지 만약 미친척하고 맥북프로 신형을 구매했었더라면 정말 일찌감치 당근행 특급열차 티켓을 끊었으리라.

M1 칩이 탑재된 아이패드 프로 11인치도 있고 해서 쓸일이 정말 있을까 싶기도 하다만, 그래도 마지막 인텔칩 내장 맥북프로니까… 그냥 소장 하면서 간간히 써줘야겠다. 혹시 나처럼 눈물을 머금고 맥북프로 16″ (2019)를 끝까지 안고 가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셨다면 조용히 위로의 한말씀 전한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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