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나는 기획자다. 정확히는 이미지 센서라는 반도체의 신규 제품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특정 모델명도 있고 사람들이 직접 구매하는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을 기획하는 약간은 특수한(?) 기획자다. 예를 들어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갤럭시 플립3의 기획자라고 한다면, 아마 이해도 쉽고 칭찬도 많이 받았으리라. 눈에 보여지고 무슨 생각으로 제품을 기획했는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기획하는 제품들은 그런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지 센서다. 이 정도 설명했지만 아마 지금 무슨 글을 읽고 있는지 헷갈리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나도 아직 내가 어떤 제품을 기획하는 사람인지 부모님께도 제대로 설명을 드리지 못했으니까. 센서가 뭔지 설명하는 것부터 난관인데 기획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사실 나도 이젠 잘 모르겠다.

기획자는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상품’을 ‘구상’한다. 구상을 내식대로 풀어보면 구체적으로 상상한다고 표현해보고 싶다. 어떠한 사양이 왜 필요하며 그걸 통해 고객 혹은 소비자가 어떤걸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시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경쟁사를 이길 수 있는지까지 예측하는 게 기획자의 업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직 초보 기획자인데 이런 거창한 얘기를 마치 고참처럼 끄적여도 되나 싶지만, 보잘 것 없는 한 명의 기획자가 휘갈긴 낙서라 생각하고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기획자의 역할을 저렇게 정의해보고 싶다.

그럼 이제 난관이 생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다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야 한다. 이건 내가 산 주식이 오를까 내릴까 예측하는 것만큼 꽤나 위험하고 누구도 섵불리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타이슨의 유명한 말처럼,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한대 쳐맞기 전까진. 여러 번 맞다보니 이제는 스스로의 예측이 맞을지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만약 당신이 기획 업무를 하고 있는데 스스로의 판단력에 확신이 생기고 미래가 손에 잡힐 것 같은가? 십중팔구 그러다 한방에 훅간다. 대게의 경우 첫번째 떠오른 방법은 정답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가 강하게 믿을수록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자는 어떠한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가정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 소비자들이 이렇게 움직일 거라 생각하고 또 그 소비자들이 어떤 걸 원하게 될지 상상해야한다.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좋지만, 발은 현실이라는 땅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게 없을수도 있고, 제조사가 원가를 줄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을수도 있으며 경쟁 우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낮을수도 있다. 그 어떤 변수가 어떤 나비 효과를 일으켜 기획자가 펼친 상상의 나래를 잘기잘기 찢어버릴지 알 수가 없다. ‘이딴 걸 기획서라고 가져와!!!’ 라며 서류 뭉치를 던지는 장면은 드라마 작가의 상상력이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필요할지 어떨지 모를 제품 혹은 서비스를 백지부터 시작해야하는 기획자의 고통 만큼은 생생한 현실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회사의 성공과 실패 분석은 인터넷만 검색해도 줄줄줄 나온다. 뻔한 클리셰처럼 인과 관계가 너무나도 뚜렷하다. 하지만 막상 내 이야기가 되면 식은땀이 나면서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늘 신제품을 기획할때 나의 스토리가 전형적인 실패담을 답습하고 있진 않을지 불안하고, 그래서 이 기획이라는 업무가 한편으로는 참 고달픈 것 같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기획자를 꿈꾸는 혹은 이미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소심한 화이팅 한 번 외쳐드리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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