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판타지

가끔 만화방에 가거나 웹툰 서비스등으로 신작들을 살펴보면, 예전과 달리 눈에 띄게 달라진 트렌드 하나가 있다. 바로 “이세계” 판타지. 주로 일본에서 줄기차게 신작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스토리라인은 대충 이렇다. 소위 블랙기업이라 칭해지는 악덕기업에서 근무하는 주인공(주로 20~30대 남자)은, 야근에 쩔어 퇴근하다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대형트럭에 치이고 죽는다. 아니 죽은 줄 알았는데 깨어나보니 달이 두개 떠있는 이세계로 전이된다. 그리고 거기서 능력을 각성하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현생에서 누리지 못한 행복을 누리며 잘먹고 잘살게 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한가지. 지금 그런 이세계 판타지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이 독자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들은 현생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현실이 절망스럽지만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없고, 무기력한 스스로에게 화조차 낼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 바로 그들이 꿈꾸는 판타지라는 것이 이세계로의 도망인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그 어느 것도 희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도 겪고 있는 문제이고, 뻔한 미래 앞에 무기력해진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길 강요받는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왜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었는지 정부나 정치권은 한번이라도 성찰한 적 있는가. N포세대를 위해 “희망”을 얘기하는 시대의 어른은 어디에 있는가? 왜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이세계 판타지를 꿈꾸며 현실에 좌절하게 만드는가?

비록 만화나 애니매이션 트렌드에 불과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희망을, 노력하면 나도 저런 주인공처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필요 없을까. 현생의 삶을 갑작스럽게 중단하고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야만 하고 싶은 일을, 꿈을 펼칠 수 있는 이야기는 볼 때는 즐겁지만 끝내 이뤄질 수 없기에 뒷맛이 너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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