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또 다시 여름이 다가오고 있고, 내 몸은 언제나처럼 물먹은 스펀지마냥 늘어지고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생각은 늘 그랬지만, 코로나 때문에 배드민턴도 못하고, 헬스장은 갈 수가 없고, 그래서 저래서 여하간 운동은 어렵다는 핑계로 그 동안 내 몸을 방치했었다.

그렇게 방치하던 어느 날, 여느 때 처럼 피자 M 한판을 유튜브 먹방 요정처럼 먹어치우고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전화도 했었는데 나는 기억을 하지 못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당 스파이크’ 였는데, 스스로 건강에 대해 자만하고 있던 사이 내 몸은 이제 최후 통첩을 날린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더 스스로를 방치하면 분명히 그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될 터였다.

안된다. 이대로는 안된다. 이제 생각만 하지말고 행동을 해야했다. 하지만 헬스장은 여전히 닫혀있고, 배드민턴도 실내 스포츠라 참석이 어려웠다. 머리 속에서 온갖 최첨단 다이어트 지식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나를 유혹했다. 먹는 것만 좀 더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실내 피트니스 시설에 가면 코로나가 걱정되니 안되지 않을까? 그냥 내년까지만 기다렸다가 운동을 다시 시작할까?

문득 이런 저런 핑계와 유혹이 나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그냥 뭔가 거창한 이론이나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 뚱뚱한 사람은 없지 않나? 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슬림해지기 위해 그냥 달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달리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보폭은 어깨 넓이 정도로 하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달리지 말고 발이 땅에 착지할때 무게 이동에도 신경쓰고 등등등. 하지만 우선 이론은 접어두고 그냥 달려 보기로 했다. 태어날때부터 걷는 연습을 했고 달리기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할 수 있었다. 즉 우리의 DNA에 달리기라는 운동은 기본으로 탑재된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달리기라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아파트 단지에서 한 2~300m 뛰면 숨이 차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쉬다가 다시 300m정도 달리고 또 쉬면서 걸었다. 그러다가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500m정도 달리고, 이어서 700m, 1km 연속으로 달려보았다. 대충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조금 넘게 돌면 1km였는데, 지금은 대략 3km를 안쉬고 한 번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목표는 5km까지 쉬지 않고 달려보는 것이다. 하니까 되더라. 이 걸 깨닫는 순간, 달리기가 너무 상쾌했다.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나는 요즘 달리기를 꼭 하고 잔다. 비가 와서 달리기를 하기 애매할 땐 아파트 계단 오르기를 하면서 다리 힘을 키우고, 무릎 주변 근육을 단련하고 있다. 달리기를 하고 나면 피곤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온몸에서 힘이 솟아난다. 달리는 동안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이 있는데, 희한하게 그 고통 와중에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오직 숨쉬기와 달리기에만 집중하면서 심장을 힘차게 뛰게 만들면, 비로소 달리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컴퓨터 앞에서 앉아만 있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원초적이면서도 강렬한 경험이자 성취감이다.

고백하자면, 몸무게는 아직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지 않았다. 2~3kg 정도 감량된 후로는 허리 둘레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무게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과인데, 그것 말고도 달리기를 하고 나서 생긴 변화가 몇가지 있다. 플라시보일지도 모르겠고 의학 지식은 전무한 사람인지라 그냥 정말 예시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지구력이 향상되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 집중력도 더 높아졌고, 더 오랫동안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업무 스트레스를 약간이라도 받았었다면 지금은 그 정도도 훨씬 덜하다. 무식하게 표현해 보자면, 전투력이 향상된 느낌이다.

둘째, 달리기 이후 하체에서 느껴지는 힘이 달라졌다. 스쿼트나 런지 등 계획적인 하체 운동을 할 때와는 뭐랄까 약간 느낌이 다르다. 그런 과학적인 운동으로 만들어지는 근육이 아니라 그냥 설명하기 어렵지만 달릴 때 필요한 근육들이 하체를 단단히 지탱해주는 느낌이다. 운동 지식도 글재주도 형편 없어서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예전과 달리 서 있을때도 단단히 힘있게 서 있을 수 있다고 일단 정리해보자.

셋째,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랄까, 정신력이 강화된 느낌이다. 몸이 고될수록 정신력이 강해지는걸까? 몸과 정신이 다르지 않다고들 하는데, 달리기를 통해 그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무식하게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 내가, 새삼스럽게 다른 운동도 아니고 ‘고작’ 달리기에 놀라움을 느낄 줄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운동하기 전에 나는 블로그에 글 하나 쓰는 것도 귀찮아서 쓰다말다 했었는데, 지금 이 글을 이렇게 집중력있게 줄줄 써내려가는 걸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이 왜 그렇게 달리기를 사랑하시는지 감히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 덕분에 간만에 글이 길어졌다. 위에 주저리 주저리 쓴 글은 잊어도 좋다. 하나만 말하겠다. 달려라. 심장이 즐겁게 비명 지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고통을 즐겨라. 그리고 그 순간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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