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아무말대잔치

그렇게 꼰대가 된다

아직 직장 생활을 한참하고 있는 나에게도,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서 자아실현 까지는 아니지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기가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에는 부장님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본인이 과로로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회식 자리는 마치 안가면 큰일 나는 것 처럼 꼬박꼬박 가고, 업무 지시를 공유해 주시는데 별다른 설명도 안듣고 마치 군대처럼 지시만 받아 오셨다. 단순히 세대차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생소한, 그래서 정말 어쩔때는 외국인 같은 느낌들을 많이 받았었다. 무엇보다 너무나 이른 아침에 일찍 오셔서 밤이 깊어지는 때에 겨우 퇴근하시는 그 모습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월급보다 치료비가 더 나가면 어쩌시려고 저러나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자리에는 효능을 알 수 없는 약들도 종류별로 많았다.

나이를 먹고, 나도 과장이 된 지금은 전후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부장님들은 짊어져야 했던 짐들이 많았다. 나와 같은 생소한 아이들에게 본인은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던 “업무 배경”에 대해서 설득력 없는 화법으로 설명이란 걸 해줘야 했고, 여전히 옛날 사람인 윗사람들에게 맞춰서 고달프게 죽어라 일 해야만 했다. 어느 회사 임원이나 아마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지만, 임원분들은 근무시간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 한밤중에나 새벽이나 본인이 필요하면 물어보고 답을 기다리신다. 야근 특근이 없는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와 같은 후배들과, 야근 특근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사들 사이에서, 우리 부장님들은 허리가 휘게 바보처럼 일만 하셨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낙인 같은 별명이 바로 “꼰대”다. 고집불통에 ‘나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과거 소환을 심심치 않게 해대는 사람. 일이 없어도 주말에 나와서 회사에서 시간 보내고 가족에겐 함께하는 시간 말고 월급만 주는 사람. 협력보단 지시가 빠르고, 대화 보단 보고가 편한사람, 지금의 회사를 만든 주축이면서 동시에 이제는 할만큼 했다고 평가받는 사람. 어느 순간 안보여도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 세월이 무서워 이제 목소리도 잘 못내는 사람. 누구보다 더 많이 눈치보는 사람… 시대가 바뀌면서 한때는 예전의 나처럼 청운의 뜻을 품고 입사하여 더 모진 세월을 견디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호칭이 바로 ‘꼰대’다.

전후사정을 안다고 해서 답답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부장님들에게도 변명 거리 한 두개 정도는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는 건 도움이 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내가 정의고 상대방이 빌런이라고 생각하는 건 유치하다. 각자의 사정이 다를 뿐이고, 무엇보다 시대가 바뀐 것 뿐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서로가 조금씩 배려하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 ‘꼰대’라는 호칭 속에 담긴 비아냥과 조롱은 너는 틀렸다는 걸 강요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지금의 나도 정말 잘 안되고 있지만, 그걸 계속 기억하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 꼰대 부장님들이 퇴직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때면, 이제 우리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직급과 함께 그 호칭까지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다. 90년대생은 00년대생과 다르고, 00년대생은 10년대생과 또 다르다. 10년대생들에게 90년대생은 이미 옛날 사람일 뿐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역사는 반복된다. 그 종류나 정도가 다를지언정 우리는 그렇게 꼰대가 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