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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SE 2020

iPhone SE 2020 버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애플의 광고 카피는 인상적이다. 이상적 그러나 합리적. 이 카피 한줄에 이 제품의 모든 설명을 담았다. iPhone SE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핵심 부품이라 할 수 있는 AP는 고사양(A13 Bionic)으로 가져가면서, 그 외에 부품 대부분은 재활용 했다. 고사양 AP 탑재는 이 폰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적어도 3년, 최장 5년 정도의 긴 유지보수를 약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폰을 구매할만한 고객들은 작은 폼팩터와 함께 화려한 사양을 요구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합리적인 가격대를 가장 중시하는 사용자들이다. 애플은 정확히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읽었고 거기에 맞는 모범답안을 제출했다.

iPhone SE는 애플의 제품 포트폴리오에 그 동안 커다랗게 비어 있던 한 곳, 바로 볼륨존을 타케팅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이전 세대 아이폰을 할인된 가격으로 고객들에게 제안했지만, 구세대 제품을 여전히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는 느낌은 약간 꺼림직하다. 그렇다고 새 제품으로 사자니 컴퓨터 한대값이 된지 오래. 볼륨존은 그렇게 애플이 비워둔 공간이었다. 그 사이 애플은 프리미엄을 다시 쪼개서 초 프리미엄과 일반 프리미엄으로 나누는 시도를 했고, 이걸로 애플 생태계에 있는 충성도 높은 사용자들의 지갑을 다시 열었다. 에어팟에 만족한 사람들이 에어팟 프로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것 처럼.

마지막 퍼즐같던 볼륨존을 위해 애플이 선택한 전략은 iPhone SE, 물론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사실 $399에 살 수 있는 플래그십 성능의 중국 스마트폰들이 꽤 많다. 스냅드래곤 865를 탑재 하고도 $399이 안되는 가격을 보여주는 vivo의 iQOO Neo3는 화면 주사율도 144Hz로 갤럭시S20보다도 더 빠른 리프레시를 자랑한다. (물론 AMOLED는 아니다) 가격만 놓고 보면 최소한 중국 소비자들이 다시 iPhone SE에 열광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애플 생태계에 만족하고 아직까지도 iPhone 6/6s를 쓰는 사용자들은 분명히 iPhone SE로의 업그레이드를 고려할 것이다. 가성비 넘치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많지만, 안드로이드는 그들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특별한 이유는 iOS, 그리고 iOS 생태계, 마지막으로 애플이 제공하는 긴 시간 동안의 유지보수(OS 업그레이드)에 있다. 애플의 로고는 덤.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같이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iPhone SE는 안드로이드 사용자들 일부도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의 생태계를 경험하고 싶지만, 그 동안 너무 비싼 가격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던 잠재 고객들을 흡수할 것이고, 그들에게 안락한 환경과 함께 앱스토어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며 지갑을 열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어느 새 작고 답답한 화면을 벗어나 큰 화면의 아이폰이 가지고 싶어질 수 있다. 애플은 물론 언제든 그 수요를 충족 시켜 줄 것이다.

여담으로, 합리적이라는 단어는 애플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맥 프로의 바퀴는 실제 자동차의 타이어보다 비싸다. 전문가용 모니터 스탠드에 붙인 가격표를 보면 정말 실재하는 가격인지 의심스럽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맥북프로는 또 어떠한가. 애플이 감히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있는가?

있다. 방금 내가 제시한 예들은 대부분 전문가들, 혹은 애플 생태계에 이미 익숙해져서 다른 대안이 얼마나 있던지 고민하지 않는 사용자층을 겨냥한 것이다. 맥 프로가 필요한 사람에겐 자동차 타이어보다 비싸든 말든 상관없다. 필요하면 내친김에 사는거고 아님 마는거다. 애플의 전문가용 모니터를 구매하는 사람은 스탠드가 얼마든 살 것이다. 사진이나 동영상, 음악 등을 편집하는 사람들에겐 맥북프로 이외에 다른 대안은 눈에 차지 않는다. 맥북 프로여만 한다. 그래서 비싼 걸 알지만 산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저렴한 아이패드를 내놓고 시장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애플이고, iPhone SE 전략도 새로운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브랜드 가치를 고려해 고가 정책을 유지하지만, 정말로 필요할 때는 과감한 가격 정책을 선보이기도 한다. 물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땐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애플의 브랜드 가치를 고려했을때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저렴하게 표현하자면, 있는 사람이 생색 내면서 싸게 파는 느낌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말 누가봐도 싸구려처럼 만들어서 싸게 파는 것도 아니다. iPhone SE은 그 사이 어디에도 없다. 그저 작고 실용적인 가격대에 최신 AP 탑재로 길게 유지보수까지 받고 싶은 합리적인 사용자들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놀랍게도 애플은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있다.

iPhone SE는 여러모로 이상적이고 동시에 합리적이다. 기업 관점에서도 사용자 관점에서도 모범 답안이라 할 만 하다. 볼륨존 시장에서 이 아이폰을 안드로이드 진영이 어떻게 상대할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애플처럼 하지는 못할 것이다. iPhone SE는 정말 딱 애플만 할 수 있는 전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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