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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럽과 동성애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끝내고 이제 겨우 생활속 거리두기(=생활 방역)가 시작되자마자 이태원 클럽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퍼져나갔다. 이 시국에 꼭 클럽에 가서 몸을 흔들어야 했냐는 비난이 많다. 또 해당 클럽들의 ‘특수성’이 더해지면서 비난이 거세다. 아직도 자발적 검사에 응하지 않은 상당수의 잠재 감염자들은, 감염 사실 여부보다 원치않는 아웃팅이 더 두려워 보인다. (익명 검사를 지원한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조용히 검사를 받으러 가길)

이태원 터줏대감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동성애자인 홍석천님은, 아직 동성애가 뭔지도 잘 모르던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냈다. 그 후 사회가 동성애를 인식하고 개인의 성적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이와중에 이번 일을 계기로 어쩌면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더 확산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을 대중에게 더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행동에 달렸다. 동성애자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동성애에 대한 권리 보호 이전에 생명 보호부터 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나아가 주변 사람들까지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즉각적인 검사와 자발적인 격리 조치다.

밤낮없이 고생하며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오직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행여라도 자신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질까 두려워 코로나19에 감염 가능성이 있음에도 검사를 회피하고 연락을 끊고 숨어버리는 건 비겁할 뿐더러 무책임하다. 처음에는 단지 이런 시기에 클럽에서 젊음을 과시한 철없는 행동에 대해 비난받겠지만, 나중에는 바이러스를 음지에서 확산시킨 비겁한 동성애자들로 낙인 찍힐 것이다.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언제나 그렇듯 책임도 져야한다. 너무 늦지 않게 자발적으로 익명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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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다 사람이 더 중요할까?

코로나19를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실천했다. 많은 이들이 당장 생계 곤란에 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건없이 국가에서 나서서 돈을 뿌렸다. 잠시 동안은 괜찮았지만, 생각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결국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직으로 내몰렸고 경제적인 활동을 멈춰야만 했다.

이로인해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차가운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당장 일을 하지 못해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서 굶어 죽는게 나을지 아니면 코로나19에 걸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밖으로 나가서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게 나을지. 자신의 젊음을 과신하여 클럽같은 곳에 간 사람들은 단지 소비와 쾌락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만, 정말로 경제적인 곤란 때문에 어쩔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각 나라별로,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조차도 서둘러 경제활동을 재개하도록 하고 있는 건, 결국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보호받기 어려운 국민들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나라도 말로는 자유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하는데, 실상은 경제가 박살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틸 돈도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봉쇄 정책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무너지는 경제를 하루빨리 정상화 할 것인가? 당연히 사람이 더 중요하고 생명이 우선이지만, 생각보다 이 당연한 선택이 쉽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명의 위협과,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실질적인 위협에 마주한 우리는 과연 경제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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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대한민국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면서, 각 나라마다 예기치 못하게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 같다.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우선하는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의 검사, 추적, 격리, 치료의 4가지 중 “추적”에 대해 사생활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고 미국은 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며 총기를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여하간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질병을 통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 보여준 것 처럼 국가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게 좋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만약 우리나라가 올바른 해법을 제때 보여주지 못했더라면, 자유 민주주의 시스템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데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공격을 받기 쉽상이었을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국가 차원의 강력한 통제라는 것은 뭔가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러한 비상 시국에 원칙만 따지면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이동을 방관하는 것은 무능하다. 중국은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그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그 방식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포기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모든 걸 경제 논리로 생각하며 자포자기 하는 건 바보같다.

자유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가진 나라들 중에서는 오직, 대한민국만이 제대로된 정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최대한 보호하면서 CCTV, 신용카드 사용내역(이게 핵심적인 도움이 되었다)등을 조사하여 잠재적인 위험자들을 식별하고 빠르게 안내하여 조치하였다.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나? 맞다. 대신 그 대가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 검사를 무료로 받게 하고 자가 격리 때 밥 굶지 말라고 지원도 해주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게 국가가 할 일이라는 대전제가 명확했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일부 자유 제한(자가 격리 명령 등)이 있었지만, 이것은 국가의 더 큰 목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를 위한 작은 희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이겨내기 위해서 노력한 깨어있는 국민들의 역할이 컸다. 나는 이정도면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불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자부심도 든다. 더 이상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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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간만에 긴 연휴를 즐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머물고 있지만, 그래도 유튜브 촬영도 배워보고 요리 레시피 구경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까 크게 심심하진 않아서 좋다. 긴 연휴 기간 동안 나의 생활 패턴은 정말 대부분 야행성인데, 아침형 인간은 정말로 나와 맞지 않구나 하는 걸 느낀다. 아침 시간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는 하지만, 어차피 아침형 인간이 잠자는 시간에는 깨어 있으니까 비교해보면 둘 다 동일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쉴 때는 정말로 모든 걸 내려놓고 푹 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제대로 쉬어야 제대로 일할 수 있으니까. 요즘 시대엔 넷플릭스와 유튜브만 접속할 수 있다면 스마트폰만 있어도 시간 보내는건 일도 아니게 된 것 같다. 나는 아직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서 책도 간간히 보고 있지만, 뭐가 되었든 별 생각 없이 지내는 이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다.

시간아, 부디 천천히 흘러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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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꼰대가 된다

아직 직장 생활을 한참하고 있는 나에게도,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서 자아실현 까지는 아니지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기가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에는 부장님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본인이 과로로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회식 자리는 마치 안가면 큰일 나는 것 처럼 꼬박꼬박 가고, 업무 지시를 공유해 주시는데 별다른 설명도 안듣고 마치 군대처럼 지시만 받아 오셨다. 단순히 세대차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생소한, 그래서 정말 어쩔때는 외국인 같은 느낌들을 많이 받았었다. 무엇보다 너무나 이른 아침에 일찍 오셔서 밤이 깊어지는 때에 겨우 퇴근하시는 그 모습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월급보다 치료비가 더 나가면 어쩌시려고 저러나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자리에는 효능을 알 수 없는 약들도 종류별로 많았다.

나이를 먹고, 나도 과장이 된 지금은 전후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부장님들은 짊어져야 했던 짐들이 많았다. 나와 같은 생소한 아이들에게 본인은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던 “업무 배경”에 대해서 설득력 없는 화법으로 설명이란 걸 해줘야 했고, 여전히 옛날 사람인 윗사람들에게 맞춰서 고달프게 죽어라 일 해야만 했다. 어느 회사 임원이나 아마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지만, 임원분들은 근무시간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 한밤중에나 새벽이나 본인이 필요하면 물어보고 답을 기다리신다. 야근 특근이 없는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와 같은 후배들과, 야근 특근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사들 사이에서, 우리 부장님들은 허리가 휘게 바보처럼 일만 하셨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낙인 같은 별명이 바로 “꼰대”다. 고집불통에 ‘나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과거 소환을 심심치 않게 해대는 사람. 일이 없어도 주말에 나와서 회사에서 시간 보내고 가족에겐 함께하는 시간 말고 월급만 주는 사람. 협력보단 지시가 빠르고, 대화 보단 보고가 편한사람, 지금의 회사를 만든 주축이면서 동시에 이제는 할만큼 했다고 평가받는 사람. 어느 순간 안보여도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 세월이 무서워 이제 목소리도 잘 못내는 사람. 누구보다 더 많이 눈치보는 사람… 시대가 바뀌면서 한때는 예전의 나처럼 청운의 뜻을 품고 입사하여 더 모진 세월을 견디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호칭이 바로 ‘꼰대’다.

전후사정을 안다고 해서 답답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부장님들에게도 변명 거리 한 두개 정도는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는 건 도움이 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내가 정의고 상대방이 빌런이라고 생각하는 건 유치하다. 각자의 사정이 다를 뿐이고, 무엇보다 시대가 바뀐 것 뿐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서로가 조금씩 배려하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 ‘꼰대’라는 호칭 속에 담긴 비아냥과 조롱은 너는 틀렸다는 걸 강요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지금의 나도 정말 잘 안되고 있지만, 그걸 계속 기억하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 꼰대 부장님들이 퇴직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때면, 이제 우리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직급과 함께 그 호칭까지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다. 90년대생은 00년대생과 다르고, 00년대생은 10년대생과 또 다르다. 10년대생들에게 90년대생은 이미 옛날 사람일 뿐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역사는 반복된다. 그 종류나 정도가 다를지언정 우리는 그렇게 꼰대가 된다.